필리프 리노프(Philipp Lynov)가 화학이 아닌 음악의 길을 택한 건 피아노계에는 더없이 다행인 일입니다. 26세의 이 러시아 피아니스트는 6살에 피아노를 시작해, 불과 8년 만에 명문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했습니다.
지난 6년간 그는 콩쿠르 무대에서 실력을 갈고닦았습니다. 2019년 폴란드 파데레프스키 국제 콩쿠르 우승을 시작으로 중국과 일본의 주요 대회에서도 정상을 차지했죠. 반 클라이번 콩쿠르 무대에 선 지금, 그는 경쟁의 압박감에 휩쓸리지 않으려 합니다. 그가 Apple Music Classical에 말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연주를 통해 계속 음악을 만들고 소통하는 과정을 즐기는 겁니다."
리노프는 여기서도 우승을 향한 기세를 이어가는 듯합니다. 초기 라운드에서 바흐(Bach)를 섬세하고 에너지 넘치게 표현하고, 슈만(Schumann)을 대담하고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등, 놀랍도록 개성 있는 해석으로 결선까지의 길을 닦았죠. 그는 인상적인 준결선 리사이틀에서 라벨(Ravel)의 인상주의 작품 '거울(Miroirs)'을 반짝이는 춤처럼 해석하며 문을 엽니다. 기술적 난도만큼이나 음악적 복잡성으로도 악명 높은 작품이죠. "섬세한 색채와 인상주의적 뉘앙스로 가득한 곡"이라는 그의 말처럼, 연주 시작부터 다채로운 음색을 수면 위로 끌어올립니다. 자유롭게 흐르는 '밤나방(Noctuelles)'에서는 라벨의 변화무쌍한 성부 진행을 본능적으로 꿰뚫는 감각을 보여주고, 4악장 '어릿광대의 아침 노래(Alborada del gracioso)'에서는 빠르게 반복되는 음들을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러운 멋과 우아함으로 소화합니다.
프로코피예프(Prokofiev)의 세 '전쟁 소나타' 중 마지막인 '피아노 소나타 8번(Piano Sonata No. 8)'. 리노프는 이 곡을 "강렬하고, 내적이며, 감정적으로 광활한" 곡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1악장에서 타는 듯한 열기를 품은 연주로 작품의 깊이를 파고들고, '안단테' 악장에서는 프로코피예프의 달콤쌉쌀한 멜로디를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게 노래하며, 풍자적인 '비바체'의 소름 끼치는 마지막 소절을 향해 대담하게 돌진합니다.